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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 요시가 고등학교 방문기

박유서 2005. 11. 15. 12:06
 

일본 시마네현 요시가 고등학교방문기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한국이란 국내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각국과 교류 할 수 있는 국제화가 대세를 이루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택하는 외국어 영역도 3개 분야 이상을 개설토록 하여 동안 고등하교에서는 영어교과 외에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를 개설하고 학생들이 선택 학습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다. 전공에 따라 중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의 학생들과 교류를 할 수만 있다면 허용토록 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와 가까운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의 학교와 교류를 주선해보라 하였더니 일본어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을 우리하교로 방문시키면 어떠냐고 하여 허락을 해주었다. 그래서 일본 시마네현 요시가 고등하교가 2004년 10월 한국으로 2박3일의 수학여행을 와서 하루를 동안고등하교 방문일정으로 잡아 우리 하교를 방문하였다. 방문한 학생들이 많지 않아(교사 4명에 학생23명) 일본 학생들을 4-5명씩 조를 편성하여 일본어를 전공하는 6개 학급 학생들과 같은 반에서 합동수업을 하고 소강당에서 동안제에서 발표한 간단한 예능발표도 공개하고 학교 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같이하는 푸로그램을 짜주니 말이 다른 나라 학생들이지만 금방 친숙해져 우리 학생들이나 일본 학생들이 한 미음이 되어 너무나 좋아하고 헤어질 때는 눈물까지 흘리며 아쉬워하였고 인솔하신 선생님들도 무척 기뻐하셨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간 요시가 고등하교 학생들이 답례로 발표회를 준비하고 학교 안내 자료를 만들면서 학교장을 초청 일본을 가게 되었다.

일본의 시마네현에 있는 요시가 고등하교는 일본 중국지방의 농촌마을에 위치한 1,2,3학년 각 한반씩인 조그만 농촌지역 학교로 동안고등하교의 많은 학생들이 갈 수가 없기에 이번에는 선발대로 교사들만 자비로 방문 학교 현황을 시찰 하고 다음해의 일정을 협의하고자 학생들은 참여 시키지 않고 교장인 본인과 우리 집 사람 교장 승진을 눈앞에 둔 이명걸 교감선생님내외 일본어 담당 최화영 선생님 내외 일본어에 관심이 있는 김태미 선생님을 포함 7명이 각자 경비부담으로 일본을 가기로 하였다. 이번에 학생들은 개별경비 문제로 참여시키지 않고 현지 사정을 알아 본 후 일본 교환 방문을 추진토록 하였다.

일본은 비자가 있어야 관광이 가능함으로 각자의 여권 유효 기간을 확인하고 비자를 발급토록 독려하였다. 나와 우리 집사람은 일전에 5년 비자발급을 해서 문제가 없지만 나머지 선생님들은 서둘러야 했다. 왜냐하면 금번 봄방학인 2월중에 가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든 여행일정은 일본어 전공 최화영 선생님께 일임하였다.

시마네현 요시가 고등학교는 일본에서도 아주 시골이라 비행기 편이 없어 후쿠오카까지 가서 버스로 가던지 아니면 히로시마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가량 타고 가야하는 시골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여행 일반 패케지 상품은 없기에 할 수 없이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2차 세계대전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까지 비행기 표 왕복권을 구입하고 일본에서는 학교 방문만 하고 우리들끼리 자유여행토록 계획을 짜도록 하였다. 언어는 서툴지만 일본어 전공 선생님이 있어 그렇게 하기로 하고 2005년 2월 17일 인천 공항 발 12시 25분 히로시마 행 비행기를 타기위하여 안양을 출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도착하니 최화영 선생님이 비행기 표를 나누워 주며 개인 짐을 부치라고 하였다. 탑승수속을 미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대부분의 승객이 일본인들 이었다. 히로시마 까지는 정기노선이 매일 있지 않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있기에 그렇다고 한다. 1시간20여분 지나 14시에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하였다. 여행사 가이드가 없어 서툰 일본말을 해가며 공항에서 1시간 걸리는 히로시마 시내까지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히로시마 전철 역 앞 광장에 내려 역 근방에 있는 그린호텔을 찾았다.

역 앞에서 7인의 말 못하는 한국인이 한참을 찾아 지하도를 건너 우리가 묵을 그린호텔을 찾았다. 역 근방에 있는 6층 정도의 자그만 빌딩으로 된 말이 호텔이지 우리의 장급 여관 수준이었다. 호텔 룸이 아주 비좁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일단 호텔에 짐을 두고 히로시마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히로시마 시내를 관광하고 내일은 오전에 미야지마 관광 후 점심을 먹고 나면 요시가 고등하교에서 시마네현 교육청에서 대여해준 버스로 우리를 마중 나온다고 하였다. 그래서 바쁜 대로 히로시마 시내 관광을 위하여 다시 역 광장으로 갔다. 역에서 전철을 타고 (여기에서 시내를 다니는 전철은 옛날 60년대 우리나라 전차모양 도로 중앙을 2개량의 객차를 연결 하여 다니는 전차임} 원폭 돔 역 에서 내려 2차 세계대전시 원자폭탄이 떨어 졋던 피폭지에 앙상하게 철골만 남은 원폭 돔 건물 그 옆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 옛 날 참상을 되짚어보았다. 원폭돔은 원폭의 참상과 위력을 기리기 위하여 잘 보전하고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돔을 둘러보고 다리를 건느니 원폭피해를 기리기 위한 평화 공원이 보이고 이곳에는 원폭 피해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탑과 평화를 기리기위한 평화의종이 시설되어 있었다. 공원을 들러보는 도중 한국에서 온 무용단이 위령탑 앞에서 위령의 넋을 기리는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인이 여기까지 와서 행사를 한다는 것을 보니 어떤 특정한 단체인 것 같았다.

히로시마에서 여행 가이드 없이 우리들이 알아서 먹고 자고 해야 하기 때문에 호텔로 가지 않고 저녁 식사를 위하여 시내 번화가 먹자골목까지 찾아갔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건물 여러 동이 밀집된 음식 골목에 가니 2층부터 5층까지 각종의 음식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였다. 각 가게마다 공간은 10여 평 정도 이고 바 모양의자에 걸터앉아서 음식을 만드는 주인을 바라보며 먹는 그런 장소였다. 전통일본음식 오미야께를(각종 야채와 고기를 섞어서 만드는 부침이)잘 한다는 집을 찾았다. 같은 형태의 고만 고만한 음식점에서 우리가 지나가면 호객을 하고 있었다. 4층 골목을 지나 손님이 없고 좀 한가한 집으로 가니 주방장이 남자인데 수건을 머리에 질끈 매고 있는 폼이 운동준비를 하는 선수와 같았다. 우리일행 7명이 둘러앉으니 가게는 꽉차버렸다. 일본음식 오미야께를 주문하니 달구어진 불판위에 각종야채와 고기 계란을 섞어서 두루치기로 볶아 말아서 각자 한 덩어리씩 먹도록 음식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을 향하여 한국의 배우들 이름을 하나씩 부여해 주었다. 누구는 누구를 닮았다. 하면서 한국의 유명배우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고 일본의 한류 열풍을 읽을 수 있었다. 주방장이 손님과 즐겁게 대화 하며 만들어진 음식이 완성되고 한 덩어리씩 내놓은 오미야께는 처음 먹는 일본음식이지만 맛은 괜찮았다. 이렇게 일본식 식사로 저녁을 먹고 백화점에도 들러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고 물건도 화려하지가 못 하였다. 우리나라 백화점이 훨씬 물건도 많고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저녁도 먹고 시장과 백화점도 보고 이제는 우리가 묵을 숙소로 가기위해 온방향의 역순으로 전철을 탔다. 안내자가 없어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일본사람들이 친절하고 안내를 잘 해주어 불편 없이 하루를 지낼 수가 있었다.

2월18일 그린호텔에서 기상하여 8시30분에 아침식사는 호텔식으로 빵과 우유 토스트 등으로 해결하였다. 식사를 하고 일본의 삼경중의 하나인 미야지마 신사관광을 위하여 기차를 타기로 하였다. 일본의 기차는 최고급인 신간센과 일반 특급열차 그리고 전철로 구분되어 있었다. 히로시마 역에서 미야지마 역까지 JR 기차를 타고 다시 배로 갈아타고 30분을 가서 미야지마 신사를 구경하고 다시 돌아오는 관광 열차 편이 운행되고 있었다. 히로시마 역에서 JR기차를 타고 廣島→ 橫川→西廣島→新吉→五日市→甘日市→宮內重→何品→宮島口역에 내려 다시 베(폐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신사가 있는→宮島에 들어 갈수가 있었다.

배에서 내리니 넓은 역 광장이 나오고 광장부터 풀어 논 사슴들이 많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사슴먹이 과자를 사서 주면 그 것을 먹고 자란 습관이 있어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먹이를 사면 우루루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신기하여 먹이를 한 봉지 사니 내 주변으로 몰려들고 먹이를 달라며 나를 따라다녔다.

몰려든 사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옆에 끼고 있던 안내 책 종이까지 뺏어 먹어 깜짝 놀랐다. 수시로 달려들기에 가방과 소지품을 조심해야 하였다. 광장을 지나 신사입구 세계문화 유산 기념비를 지나 일본의 3경의 하나인 宮島神社와 바다에 세워진 오토리문(大 島 居) 등을 관람하였다. 섬 속의 고요한 산비탈에 세워진 신사에는 샌가꾸조 오층탑 모미지공원등이 잘 가꾸어져 있으며  바다위에 솟아있는 오토리문은 정말로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특히 신사에서 바다위의 문을 보면 정중앙이고 바닷물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신사의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아름다운미야지마 신사관광을 마치고 신사주변의 전통 일본음식점에서 일본요리 우동으로 점심으로 먹었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 요리로 어제는 오미야께 오늘은 우동을 시식해 본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오후에는 우리가 방문할 요시가 고등하교에서 히로시마까지 마중 나온다하여 갈 때는 급행열차를 타고 히로시마까지 돌아왔다. 호텔로 다시 가서 짐을 챙기고 기다리니 요시가 고등하교 양호선생님이 봉고차 한 대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우리끼리 일본을 돌아다니다 선생님을 만나니 한 가족을 만난 것과 같이 아주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었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우리는 시마네 현으로 향하였다. 가면서 우리가 갔다 온 미야지마 신사가 일본의 3경이란 소리를 들었다하니 선생님께서 맞다하고 일본의 3경은 첫째 히로시마의 宮島(미야지마)요 두번째가 宮城의 陸前 松島요 세 번째가 京都의 丹後 天橋立이라고 알려주었다. 한참을 가니 커다란 산을 꾸불 꾸불 올라가고 내려오니 개천 같은 강이 보이는데 주변에는 커다란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아주장관을 이루었다. 얼마 후 야마구찌현 (山口縣)의 岩國市에 아름다운 나무로 만들어진 400년이된 錦帶橋(Kin fai kyo)가 보이고 야마구찌 산성도 아름답게 보였다.

도로를 달리면서 운행되는 차량들의 번호판을 확인하니 노란색 번호판의 작은 경차들이 많이 보이는데 통행료나 주차료 등에 50%의 감면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그 밖의 중대형 일반 차들의 번호판은 흰색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히로시마를 떠난지 2시간30여 분만에 일본농촌속의 조그만 시마네 현 요시가 고등하교에 도착하였다. 학교모습은 아담하고 각종체육 시설과 부지가 넓은 학교였다. 학교장은 현 내 교장들의 연찬 때문에 출장중어서 모든 것을 교감선생님이 안내하셨다. 우리가 도착하니 선생님들이 현관까지 나오셔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곧바로 상황실로 이동 학교 현황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전체 선생님들께 상호 인사를 하고 학교 시설물 시찰을 하였다. 교육시설은 우리나라나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인상 깊게 본 것은 각종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고 그중 꽃 꼬지 반에는 자원 봉사자가 강사로 출장 세세하게 지도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학교가 작아 운동하는 학생들의 인원은 적지만 체육관에서 열심히 배구연습을 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하였다. 학교 시찰을 마치고 소강당에서 1년 동안 발표했던 각종 교육 자료를 전시하고 그림카드로 작년에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학생들이 재미나게 교육과정과 장기들을 소개하였는데 무척 소재가 다양하고 재미있었다. 학교방문을 마치고 나니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 교감선생님 말씀이 만찬에는 교직원중 희망자만 참여하도록 한다고 한다. 이는 행사에 참여 하드라도 학교경비로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교감선생님과 담당 선생님만 학교에서 경비를 지원해주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자비로  만찬비를 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외부 손님을 접대할 때 무조건 학교 경비로 지급하지 않고 공사를 확실 하게 챙기는 일본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우리가 먼저 온천장이 달린 식당으로 가고 선생님들은 뒷정리를 하고 오신다고 하셨다 식당에 도착하니 수영장과 온천장이 딸린 커다란 호텔이었다. 전번에 우리학교를 방문 하였을때 내가 수영을 좋아 한다고 하여 이곳에 숙소를 정하였다고 한다. 우리 선생님들과 요시가고 선생님들이 한데 어울려 회 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그 자리에 노래방기기를 설치 국가대항 1대1 장기자랑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한국 선생님들이 부를 수 있도록 우리말 노래가 나오는 노래방 기기가 있었다. 책임자인 내가 제일 먼저 울고넘는 박달제를 불렀다. 이어 요시가 고등하교 교감선생님이 일본노래로 다시 우리교감 일본의 교무주임 이렇게 한 순배 돌고나니 완전히 국적을 초월한 한민족 같았다. 계속해서 1대1대항을 하는데 워낙 우리학교 이명걸 교감선생님의 노래솜씨가 좋아서 우리가 완승을 하였다. 이어 양국의 선생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리랑을 부르고 2002한일 월드컵 때의 응원가 오-필승 코리아를 합창 하면서 여흥을 마쳤다.

아리랑과 오 필승코리아 노래는 그들도 우리보다 더 잘 불렀다. 여흥을 마치고 일본선생님들은 귀가하고 내일 아침 7시에 떠날때 다시 오겠다 하시면서 교감선생님도 귀가 하셨다. 호텔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수영을 해보려고 수영장을 가니 밤10시까지만 하고 문을 닫아 할 수가 없었다. 수영장 시설은 잘되어 있는데 친목회가 늦게 끝나서 할 수 없이 호텔로 되돌아 왔다. 방을 2개만 정해주어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들은 여자 끼리 한방에 모여서 자기로 하였다. 남자 방에는 나와 교감선생님 그리고 최선생님 남편 3인이 취침하고 여자 방에서는 우리집 사람 교감선생님 사모님 그리고 일본어담당 최선생님과 수학과 김선생님이 함께 밤을 지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나니 일본 교감선생님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하여 벌써 호텔에 와계셨다. 준비해주신 시마네현 교육청 소속 봉고 버스를 타고 히로시마로 가기위하여 신간센이 지나가는 新岩國 역까지만 우리를 데려다주신다고 하였다.

 2005년도 9월에 2차 수학여행단의 일정과 양교간의 친목도모를 위한 협의와 교육에 대한 공동관심사를 다룬 2일간의 즐거운 만남을 뒤로하고 요시가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들과 역전에서 작별 하였다.

신암국 역에서 일본에 왔으면 신간센 열차도 타 보아야 한다고 하며 선생님들이 신간센 열차 표를 샀다. 일본에서 제일 빠르고 좋은 시설로 꾸며졌다고 자랑하는 신간센 열차를 타고 히로시마까지 갔다. 열차에 오르니 아담하고 깨끗한 열차 좌석에 하얀 씻트가 덮여있고 한쪽은 3인이 한쪽은 2인이 앉도록 구조된 열차였다. 타고 달릴 때 창가를 보니 무척빠르기 때문에 밖의 경치를 잘 볼 수가 없었고 직선주로 시설로 많은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40여분 후 히로시마 역에 도착하였다.

역에 도착하니 신간센 열차와 JR 열차가 복잡하게 드나들며 가는 방향도 다양하여 우리가 갈 열차와 오까야마 (岡山)방향을 잘 살펴야 하였다. 일본에 와서 신간센 특급열차 그리고 JR 열차 전철 모두를 안내양 없이 우리가 스스로 찾아서 열차 표도 끊고 개찰도 하고 탑승해보니 참으로 신기하고 외국에 온기분이 아니었다. 또한 간단히 언어만 구사할 수만 있다면 여행 가이드 없이 자유 여행을 해 볼만 한 충동이 생겼다.

19일 3일째 되는 오늘은 히로시마 위쪽에 있는 오까야마(岡山)에서 벌어지는 일본 민속 하다가 맛지리(2월의 추운날씨에 옷을 모두 벗고 훈도시만 차고 수 천 명이 어울려 몸싸움을 하며 추위도 이기고 담력도 기른다고 함)관광과 오까야마 고라꾸엔 정원과 하야미 성을 보기위하여 히로시마에서 JR 열차를 갈아타고 오까야마(岡山)까지 가는 것이었다. JR 열차는 우리나라 보통열차 수준이었다. 1시간30분후 역에 도착해서 짐을 가지고 내려와 역 근방에 있는 오까야마 그린호텔을 찾았다. 호텔에 짐을 두고 점심식사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빨리되는 음식으로 역 근처 라면집으로 갔다. 우리나라 분식점 같은 구조인데 남자 주방장과 남자 안내원이 우리를 안내하였다. 라면과 만두를 섞어서 먹는데 밥도 추가해 주었다. 그런데 김치와 단무지는 매우 인색하였다. 점심을 해결하고 고라꾸앤 정원관람을 위하여 택시 2대로 나누어 타고 공원을 찾았다.

오까야마 고라구엔 정원과 하야미성은 오까야마에서 가장 자랑하는 곳으로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 정원의 하나라고 한다 엔요데이(延養亭)정자와 노(能) 전통극 무대를 중심으로 한 정자들과 정원 곳곳에 산재해 있는 다실과 사당에는 번(蕃)의 역대 영주들의 아련한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다. 넓은 잔디밭 연못 인공조산 그리고 다실 등은 정원의 산책로 수로와 잘 조화를 이루어 천천히 걸으면서 게절의 변화에 따라 그모습을 달리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임천회유식(林泉回遊式)정원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물길도 따르고 자그만 동산에도 오르고 쉼터정자에도 앉아서 경치를 관망하는 것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없는 장관 이었다. 정원 산책을 마치고 오까야마 성주들의 집거지인 성을 관광하였다. 일본성의 특징인 나무재질과 뾰족한 지붕들이 특이하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성과 정원관광을 끝내고 다시호텔로 와서 대기하다가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하기로 하였기에 며칠간 일본음식으로만 먹어서 한국교민이 운영하는 불고기집을 찾았다. 된장 찌게와  불고기로 식사를 하고 오까야마 시내 백화점과 야시장을 돌아보았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대나무 뜨게 바늘 한 셋트와 미용용 소금을 샀다. 호텔로 돌아와 밤10시부터 서대사(西大寺)에서 진행한다는 축제 하다가 맛지리를 관람 하기 위하여 서대사 까지 가는 전철을 타려고 오까야마 역에 가서 개찰을 하고 정차장에 나갔더니 막차가 곧 온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우리가 기다리던 홈보다 훨씬 아래쪽 홈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막차를 놓쳤다. 할 수없이 역무원에 사정을 하고 표를 물려받고 역을 나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물려주며 말이 많거나 투덜대일 텐데 아주친절하게 그대로 물러주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 시간은 임박하고 여선생님들이 꼭 봐야한다고 하여 할 수없이 택시를 타고 서대사로 이동하였다. 서대사 근방에 가니 벌써 경찰들이 나와서 절 주변의 교통을 통제 하고 있었다. 하다가 맛사지란 각 마을 단위로 장정들이 모여 옷을 모두 벗고 무리를 지어 절 운동장으로 몰려들면 다른 골목에서 같은 방법으로 몰려들고 하여 수 천 명의 장정들이 추운날씨에 발가벗고 모여들며 자기마을의 위새를 높이는  축제였다. 남자라면 태어나서 한번쯤은 꼭 참여해야 하는 아주소중한 행사라 하며 매년 추운 2월에 진행된다고 한다. 남자들이 벗은 모습으로 골목에서무리지어 나오는 것이 무척 신기한지 여선생님들이 호기심어린 눈길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일본의 각지에서 모여든 모든 마을 청년들의 벗은 모습 수 천 명은 정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식의 절정은 장정들 수 천 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밀치고 당기고 하는 도중에 불이까지고 연기 같은 안개가 쌍이고 그곳으로 무엇인가 던져지는데 그것을 잡는 사람이 최고의 대우자가 된다고 한다. 2시간야 치러진 행사가 자정이 지나서야 끝나고 참여자는 각곳의 대기소로 뿔뿔이 헤어졌다 특이한 일본의 축제를 밤 늦게 까지 관람하고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돌아 오니 새벽 1시가 되었다. 깊은 밤이라 잠을 빨리 청하고 잠에 들었다.

20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식으로 식사를 하고 일본에서의 마지막날 오까야마 시내관광을 하였다. 일본시내의 역주변이나 시장모습은 우리나라 시장주변 모습이나 비슷하였다. 히로시마 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가 없어 오까야마 역에서 JR 전차를 타고 중간지점인 후꾸야마(福山)까지 가서 그곳에서 리무진 공항버스로 히로시마 공항까지 갔다. 공항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 식사를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던 눈은 그치고 언제 눈이 왓더냐 싶게 날씨가  맑아졌다. 점심을 먹고 출국시간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공항 주변의 시설과 쇼핑몰을 시찰하고 면세점도 들러 보았는데 지열된 물건이 다양하지 못하였다. 저녁6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학교의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개인관광을 위한 3박4일간의 일본여행을 마무리 하였다.